[인터뷰] 이상봉 디자이너, 가톨릭대학교 학위복에 ‘정통’과 ‘자긍심’을 담다
- 작성자 :대외협력팀
- 등록일 :2026.02.26
- 조회수 :131

Q1. 처음 가톨릭대학교 학위복 리뉴얼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연락을 받았을 때, 반가움이 먼저였어요. 사실 가톨릭대학교와는 예전부터 인연이 있었거든요. 난민 출신 학생들과 전시 프로젝트를 함께한 적도 있고, 15년 전쯤에는 특강을 하러 캠퍼스를 찾은 기억도 있습니다.
이번 의뢰를 계기로 학교의 역사를 다시 찾아봤어요. 가톨릭대학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이고, 170년의 시간을 이어온 대학이라는 걸 알고는 솔직히 좀 놀랐죠. ‘이건 그냥 옷 만드는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단순히 학위복을 새로 디자인하는 일이 아니라, 한 대학의 역사와 정신을 옷으로 다시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느꼈어요. LIE SANGBONG이 늘 고민해 온 ‘문화와 예술을 입힌다’는 철학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고요.
이런 학교라면,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적 순수성과 지성을 하나의 옷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디자이너로서도 설레는 일이었죠."
Q2. 가톨릭대학교를 직접 들여다보시고, 그 역사와 정체성을 알게 되셨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디자이너로서 특히 어떤 부분이 크게 다가왔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개화기가 선교사들을 통해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거치지 않고 서구 문화가 직접 들어온 출발점 중 하나가 이런 학교들이라고 보고요. 가톨릭대학교가 그 흐름 안에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역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늘 새로운 걸 이야기하지만, 오래된 시간 자체가 힘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몇 대에 걸쳐 이어져 왔는지, 그 시간이 곧 자산이죠. 가톨릭대학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학교라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알았는데, 학생들 중에는 잘 모르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종교를 떠나서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만한 역사라고 느꼈습니다.
캠퍼스를 직접 걸어보니 또 다르게 다가왔어요. 언덕 위에 자리한 공간, 오솔길처럼 이어지는 길들. 처음 방문했을 때 두 시간 넘게 계속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간 안에 묘한 균형감이 있었어요. 오래된 것과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느낌이었죠.
그때 느꼈던 ‘균형’이라는 감각이 디자인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하느님과의 수직적 관계,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 두 축이 교차하는 구조를 옷 안에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H라인 배색 구조를 중심축으로 삼았습니다."

Q3. 학위복처럼 전통이 강한 옷을 디자인하시면서, 특히 ‘이건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또 반대로 현대적으로 풀어낸 지점은 어디였는지도 궁금합니다.
"학위복은 제복이자 의례복이잖아요. 그래서 ‘격식’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권위와 무게감이 사라지면 의미도 약해질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다른 학교 사례보다 ‘역사’를 먼저 공부했습니다. 학위복의 기원, 가톨릭 전통 복식의 구조와 상징을 다시 찾아봤죠. 영화나 성화에 등장하는 복식까지 살펴봤습니다. 사실 세계 법관복의 기원도 이 전통에서 나옵니다. 대법원 작업을 하면서 외국 법복을 봤을 때도 같은 뿌리를 느꼈어요.
그래서 아카데믹 가운의 A라인 실루엣은 유지했습니다. 대신 형태는 재해석했습니다. 신부님들의 전례복 구조를 연구해 조금 더 건축적인 실루엣으로 풀었습니다. 상징은 남기되 그대로 복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입는 사람도 중요했습니다. 졸업식 날 불편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지퍼 대신 히든 똑딱이 여밈을 적용하고, 내부 수납 디테일도 더했습니다. 전통은 지키되 불편함까지 그대로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Q4. 이번 학위복에서 망토(케이프)는 가장 눈에 띄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망토를 선택하게 된 배경과 디자인 과정에서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망토는 신부님들의 전례복에서 비롯된 구조입니다. 자료를 굉장히 많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학위복은 또 다르잖아요.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입어야 하고, 체형도 모두 다르니까요.
길이를 굉장히 많이 고민했습니다. 너무 길어도 어색하고, 너무 짧아도 균형이 깨집니다. 맞춤복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학생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계절이었습니다. 졸업식은 계절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전통의 형태는 지키되 현실적인 기능을 더한 겁니다.
그리고 이 케이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성령의 비둘기 날개를 형상화한 구조입니다. 팔을 펼쳤을 때 위로 뻗는 직선 안에 ‘비상’의 이미지를 담고 싶었어요. 졸업은 결국 학교라는 품을 떠나는 순간이니까요.
솔직히 그런 상상도 해봤어요. 졸업식 때 모자 던지듯이, 망토를 툭 벗어 던지면서 날리는 거죠. (웃음) 그런 자유로움도 학위복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Q5. 학사-석사-박사로 이어지는 위계는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통일감이 느껴집니다. 위계를 표현할 때 어떤 기준을 두셨나요?
"학위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옷이 완전히 달라 보이길 원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같은 뿌리에서 자란 다른 가지’처럼 보이길 바랐습니다.
가톨릭대학교의 상징색인 블루를 중심에 두고, 학사에서는 중심색으로, 석사와 박사에서는 반전된 포인트로 활용했습니다. 같은 색을 공유하되 쓰임을 달리한 겁니다.
그리고 저는 위계를 너무 과하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학위가 다르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옷처럼 보이면 공동체 느낌이 깨지거든요. 단계는 다르지만 공동체의 결은 하나로 유지하는 것. 그래서 ‘하나는 하나답게, 다름은 디테일로’라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Q6.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모티프는 이번 디자인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를 학위복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이미지는 무엇이었나요?
"비둘기를 단순한 장식으로만 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상징이 구조 안에서도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래서 날개에 집중했습니다. 팔을 펼쳤을 때 자연스럽게 퍼지며 위로 뻗어 오르는 흐름. 그 안에 비상의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박사복은 소매 폭을 더 넓게 했고, 학사와는 길이와 터지는 정도를 조금씩 다르게 했어요. 약간 열리듯이, 펼쳐지듯이 해서 날개 같은 실루엣이 되도록 했습니다.
인간은 날 수 없잖아요. 날개는 비둘기만이 가진, 성령의 상징적인 힘이니까요. 그래서 그 ‘날 수 있는 힘’을 형태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7. 이번 학위복에서는 전체적으로 ‘절제된 조형미’가 느껴집니다. 디자이너님께서 생각하시는 가톨릭다움, 그리고 ‘과하지 않음’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학위복은 유니폼입니다. 모두가 함께 입는 옷이죠. 그래서 가장 먼저 세운 기준이 '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숭고함은 화려함이 아니라 정갈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넥라인도 절제했습니다. 옷이 앞에 나서기보다, 입은 사람이 빛나야 한다고 봤습니다.
미니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가톨릭 전통 복식의 상징도 들어가고 요소가 충분히 있거든요. 절제 속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학위복은 수십 년을 입을 옷입니다.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유난히 오래 고민했고, 샘플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Q8. 여러 디테일 가운데, 디자이너님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전면의 H자 배색 구조입니다. 가톨릭대학교의 정신을 패션 언어로 번역한 저만의 해석이었거든요. 동시에 소재에도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학위복은 오래 입는 옷이니까요. 무겁지 않으면서도 밀도는 유지해야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졸업생을 배려한 자석 여밈과 경량화된 소재 등 '입는 사람을 생각한 디테일'들이 하나로 모여 이번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 큰 애착을 느낍니다.
컬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더 진한 곤색을 원했어요. 무난한 색을 선호했죠. 그런데 저는 이건 매일 입는 옷이 아니라 한 번 입는 옷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졸업식은 축하의 순간이고, 사진으로 오래 남는 날이니까요.
그래서 조금 더 열린 블루를 선택했습니다. 막상 완성된 옷을 입어보니 반응도 달라졌어요. 그 과정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Q9. 이 학위복을 앞으로 수천 명의 졸업생들이 입게 됩니다. 디자이너님께서 이 옷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 그리고 졸업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졸업식 날, 사진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지만 5년, 10년, 20년 지나면 그 사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교정에서, 강의실에서, 친구들이랑, 가족이랑. 많이 찍어두세요. 그게 나중에 자기 젊은 시절을 꺼내보는 가장 큰 선물이 됩니다.
졸업식은 학교와의 마지막 행사잖아요. 이 학위복을 입으면서 ‘나는 이 과정을 끝냈다’는 감각과 함께 ‘나는 가톨릭대학교의 졸업생이다’라는 자긍심을 느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옷이 스스로의 노력을 증명하는 하나의 ‘훈장’처럼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가톨릭대학교의 신앙적 가치와 지성을 가슴에 품고 세상으로 날아오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가 설계한 이 '비둘기의 날개'를 달고,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평화와 진리의 빛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글/사진 : 대외협력팀, CUK프렌즈 권민제

